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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살의 미대입시 도전기

미대입시 체험기 마지막 8) 입시결과와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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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미대입시 체험기 1) 지금 시작해도 충분하다

[기타] - 미대입시 체험기 2) 실기와 공부 병행하기

[기타] - 미대입시 체험기 3) 우리의 목표는 1, 2등급이 아니다

[기타] - 미대입시 체험기 4) 내가 모르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기타] - 미대입시 체험기 5) 영어가 제일 어려웠다

[전체] - 미대입시 체험기 6) 이렇게 된거 실기시험도 치러간다

[기타] - 미대입시 체험기 7) 드디어 수능이다


* 인물소묘 학생작


 처음에는 진숙이로 시작하여 학생들의 성적 관리와 공부에 도움이 되고자 시작했던 공부가 직접 수능도 쳐보게 되었고, 기왕 수능을 쳤으니 실제 실기 시험장에 가서 학생들의 그림 수준이나 유형을 직접 보고오면 좋겠다 생각을 하여 실기 시험까지 치르게 되었다. 


 정시 지원 최종 결과 부터 얘기하자면 가군 한성대, 나군 홍대, 다군 국민대에 지원하여 한성대 수석 (나와 같이 실기시험을 치러 갔던 두 학생도 모두 합격하였다.), 홍대는 1차 불합격, 국민대 합격(같이 갔던 두 학생 중 1명 합격)을 하였다. 물론 등록은 하지 않았다. 


 홍대는 실기시험도 없지만 지원하게 된 이유는 중요한 합격요소인 미술활동보고서 (미활보)에 교과활동을 전혀 기재하지 않고 비교과활동 만으로도 합격이 가능한지 궁금하여 지원해 보았다. 인문계 학생들의 경우 예고 학생들에 비해 교과 활동에서 부족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이 비교과활동을 충실하게 준비한다면 극복이 가능한지 극단적인 방법으로 증명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 1점 차이로 1차에서 불합격 하였다. 나보다 1점 높았던 한 학생은 1차 합격하여, 1차합격자 중 최저의 점수로 1차를 통과했다. 그리고 최종합격까지 한 것을 보면 2차에서는 미활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홍대의 경우 실제로 다닐 생각은 없으니 지원 학과는 크게 상관도 없었다. 그래서 최근 2년간 1차 합격 커트라인이 낮았던 동양화과에 지원했다. 하지만 작년 수능 상위레벨의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디자인과 지망의 수능 고득점자들이 디자인과에 지원했다가 1차 탈락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동양화과로 학생들이 몰리는 탓에 동양화과 1차 통과 점수가 높아졌었다. 그 와중에 나보다 훨씬 점수가 낮았던 학생이 재수를 각오하고 회화과에 지원하여 최종합격 한 것을 보면 그냥 소신 지원하는게 답인 듯하기도 하고, 그냥 입시는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입시에서 1점 차이는 똑같게 느껴지면서도 경우에 따라서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점수이기도 하다. 특히 서울대처럼 최저 등급을 맞춰야 하는 경우 더 그렇다. 학생들 중 서울대 서양화과에 1차 통과했던 학생은 정말로 1점 차이로 최저 등급을 맞추지 못해 불합격 하였다. 10점 차이던 1점 차이던 떨어진 건 마찬가지지만 너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수업하던 화실에서 홍대는 최종적으로 3명이 합격하였고, 이대 수시에 2명 합격, 정시에서는 4명이 지원해서 3명이 합격하였다. 이대 지원자 4명 중 가장 성적이 높았던 학생만 불합격한 것으로 이대 정시에서 실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그 학생은 결국 홍대와 국민대에 2관왕 합격하였다.)


 국민대 회화과는 실기 유형이 좀 특이해서 꼭 실제 시험장에서 학생들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어 지원했다. 그림 내용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쓰겠지만 결국은 잘그리는게 그냥 중요하더라. 나 포함 3명 지원했고, 3명모두 수능성적은 1~2점 차이로 거의 같았지만 실기력의 차이로 한 명은 아쉽게 떨어지게 되었다. 

 

성신여대는 떨어질 줄 알았던 학생이 최초합격하여 모두를 놀라게 하였고, 동덕여대는 당연히 붙을 줄 알았던 학생이 3차 추가합격으로 아슬아슬하게 합격하여 애타게 하였다. 특히 동덕여대 합격생은 나머지 대학에 다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더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 한성대는 좌석 번호가 정해져 있었다. 나는 1번으로 맨 왼쪽 측면이었다. 군인이 키가 크고 의자에 약간 걸터앉아 있어서 발 앞쪽이 많이 잘려나갈 수 있는 자리였다. 그래서 전체적인 크기를 약간 작게 잡아 스케치했다. 


 한성대도 실제 학생들의 인체실기 유형과 실력을 보고 싶어 지원하였다. 두 학생이 나와 같이 시험을 치러 갔다 왔고, 세명 다 합격하였다. 한 명은 같은 고사실에서 같은 모델을 보고 그렸다. 국민대에서도 그랬지만 그림은 두세시간 정도만 그렸고, 중간중간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다른 학생들의 그림을 볼 기회가 있었다. 감독관 허락 하에 복도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마시기도 했다. 특히 한성대는 고사 종료 후 그림을 앞쪽에 펼쳐서 제출하게 했기때문에 미리 재료를 정리해 두었던 나는 고사실을 돌아다니면서 거의 모든 학생의 완성작을 볼 수 있었다. 시험장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만 하는게 좋을 것 같다. 한성대는 서양화과는 정원 13명에 경쟁률이 12:1 이었고, 한 고사실에서 10명이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우리 고사실에서는 나 포함 최초합격이 3명이 있었고, 합격가능 예비번호가 2명이 있었다.

 고사 당일 입실완료 시간 전에 긴장에 약했던 효진이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효진이의 고사실에 가서 얘기도 하고, 우리 고사실에도 데려와서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고사장 건물 내 화장실에서 군복입은 사람을 보게 되었다. 혹시 모델 복장 인가 싶어서 군복 처리 방법을 미리 설명해 주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다른 학생들의 그림을 보아, 군복 표현이 합격의 당락을 가르는 중요한 평가요소 였다는 것은 확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난이도 높은 인체는 아니었다. 가군이라 첫 시험이기도 하고 군복때문에 당황해서 그렇지 막상 생각해보면 상하의 모두 같은 옷에, 드러나 있는 피부는 얼굴과 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물도 없고, 모자를 썼기때문에 머리카락도 없어서 여유있게 생각하고 군복의 무늬를 차분하게 표현했으면 누구나 합격이 가능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 필요이상으로 급하게 진행하면서 무늬를 터치로만 처리하기 바빴다. 결국 나중에는 시간이 남아서 어두워 지거나 터치만 많아지는 그림이 많았다.


 나의 수능성적이 엄청 대단한 점수는 아니다. 만약 홍대를 목표로 하는 입시생이었다면 불합격 했을 정도의 점수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1년이나 지나서 후기를 쓰게 된 것은, 문득 생각해보니 벌써 9월인데 지금쯤 정신차리기 시작하는 입시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어서다. 대부분 지금쯤은 뭔가 달라져야하고, 이제는 공부도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미 늦은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거기에서 오는 좌절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그럴거다. 하지만 바닥부터 시작한 나도 짧은 기간 내에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짧은 기간 동안 공부를 한다면 얼마나 해야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고, 하루에 4시간씩 매일 실기수업을 하면서도 수능 준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이 글이 의지를 살리고, 용기를 키우는데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어 성공적으로 입시를 끝낼 수 있다면 좋겠다. 


 올해도 수능을 치고, 실기시험을 보러 갈 생각이다. 올해는 새로운 교재를 살 예정도 없고, 따로 공부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공부가 또 하기 싫어서 라기보다는 그냥 5등급 정도의 점수만 받아서 실기력으로 어느 정도까지 커버가 가능한지 보고 싶어서다. 일단은 건대, 성대,  세종대, 상명대, 경희대 등의 학교를 생각중이다. 


*혹시 궁금한 점이 있다면 물어보시면 얼마든지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뭔가 댓글 달기 부담스러운 블로그 인가요? 댓글이 하나도 없으니 뭔가 아쉽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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