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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 후기: '커피세계사' -탄베 유키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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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잔 일러스트가 예쁘다

 

 나는 보통의 경우보다는 커피에 대해 약간 더 많이 아는 편이다. 그것은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아내 덕분인데, 그래서 나에게 커피란 아내와 떼어놓고는 떠올릴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커피에 대한 지식은 우리 부부에게 좋은 대화 소재가 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커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언제나 본인에 대한 관심에 목말라 있는 아내에게 나의 애정이 아직 식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 시켜줄 수단이 될거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게 된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아내 덕분에 그동안 질 좋은 원두로 제대로 내려진 커피를 마시게 되면서 나도 약간은 까다로운 입맛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원두에 따른 맛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로스팅의 정도나 추출방식에 따른 취향도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내 입맛에 더 잘 맞는 커피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부족한 지식으로 미각과 후각에만 의존하다보니, 같은 커피임에도 어느 날은 맛있었던 커피가 어느 날은 별로인 것처럼 그 맛과 향에 대한 기준이 애매할 때가 많았다. 좀 더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지식 습득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커피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도 이 책을 보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커피 세계사는 언제 어떻게 커피나무가 지구상에 나타나게 되었을까에 대한 추정과 함께 인간과 커피와의 만남의 시작인 염소치기 칼디와 쉐이크 오말 발견설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커피가 음용되기 시작한 확실한 시대는 15세기경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이 마시는 기호음료 중 각각 5000년, 4000년의 역사를 지니는 차와 카카오에 보다 커피가 훨씬 오래 전부터 인류와 함께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은 과학적 근거를 찾기 어렵고 보존된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에 의한 추측들과 가설에 의존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속 에피소드는 사실 그 자체보다 다소의 과장과 각색을 거쳐 재미가 더해진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수용되고 확산되기 쉽다. 게다가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야기는 선전효과까지 만들어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용이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창작해내는 경우도 많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좋은 정보를 선별해서 받아들여야 하지만 일반인이 제대로 된 정보만 걸러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저자 탄베 유키히로는 이 책의 집필 동기로 커피 애호가 중 한 사람으로서 과장과 각색 등이 섞이지 않은 진짜 커피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정보를 담고 있을거라 생각된다. 저자는 설화와 민간전례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주거나 신빙성이 결여되는 이유를 같이 기술하기도하고, 로부스타종의 교유한 이용법인 씹는 커피에 대한 기록을 소개하면서 그 기원에 대한 추측을 해보기도 하고, 루왁 커피가 최고급 커피로 알려지게 된 이유와 함께 그에 대한 저자의 견해 등을 같이 기술하고 있다. 또 10~11세기에 저술된 커피에 관한 최초의 역사자료를 아라비아 반도에 커피가 전해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근거로 소개하면서 1996년 두방 북동부의 쿠시 유적에서 출토된 커피콩 두 알을 근거로 제시하여 당시의 커피 이용이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확산되지 않았을까하는 합리적인 추측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근거자료의 유무여부와 함께 널리 알려져 있는 가설들도 같이 전하고 있는 점은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모두가 들어봤을법한 '모카'라는 이름은 원래 아라비아 반도 남단 예멘에 있는 항구도시의 이름이다. 17세기에 예멘과 에티오피아 산지에서 수확한 커피콩들을 이 항구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면서 유명해졌고 오늘날 가장 오래된 커피 브랜드이자 고급 커피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볼 수 있는 '예멘 모카', '에티오피아 모카', '모카 하라' 등의 이름에 대한 역사 배경은 그 동안 막연히 마시기만 했던 커피에 대한 호기심을 기분 좋게 채워준다.
 이 책에 따르면 커피는 15세기에 드디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 시작은 예멘에서 확산된 '카와'라는 음료라고 한다. 하라 원산인 캇이라는 식물의 잎으로 만든 '캇 카와'가 예멘에 최초로 소개되었고 이후 15세기에 접어들어 예멘의 아덴에서 커피로 만드는 카와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카와는 이슬람 신비주의자들 일파인 '수피'들이 디크르dhikr(창념)라고 하는 신의 이름을 부르는 독특한 의식에 사용되면서 크게 보급되었다. 
 이 무렵 '커피 카와'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기실 카와'(키시리아)는 열매를 건조하면서 파치멘트와 과육이 붙어버린 상태의 껍질 부분만을 끓인 것이고, '분 카와'(분니아)는 커피콩이 들어있는 열매를 통째로 구워서 끓여내는 것이었다. 저자는 일본의 로스터리숍 '커피 비미'에서 기실 커피를 마셔 보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수세식 정제 과정에서 제거되는 과육 부분만을 건조한 '카스카라'가 중남미에서 거래되는데 기실 커피와 비슷한 풍미도 있고 구매도 비교적 쉽다고 한다. 기실도 카스카라도 현재 우리가 아는 커피와는 매우 다른 음료지만, 커피에 흥미가 있는 나로서는 이야깃거리로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마셔보고 싶다.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전파된 커피는 16세기에 두 명의 시리아인 하킴과 샴스가 카페하네를 오픈한 것을 계기로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도 보급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커피와 커피하네의 유행이 시대적, 사회적 현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16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 이면에는 신분과 사회제도에 대한 불만에서 오는 염세관이나 정치부패에 의한 허탈감 등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현실에 절망한 사람들이 자연스레 수피즘으로 빠진 것이 커피의 보급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반대로 정치, 상업적인 동기에 의해 커피 반대운동으로 카페하네가 감시와 제제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커피금지령과 함께 3만여 명 넘는 사람들이 처형되기도 했다. 
 이후 커피는 지중해, 동인도회사, 파리, 빈의 네가지 루트를 통해 유럽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홍차의 나라'로 알려진 영국에 차가 전해진 건 커피보다 나중 일이라고 한다. 유럽에 전해질 당시에는 호사가나 귀족 등 일부 사람들만 마시는 음료였지만 커피하우스의 등장으로 '시민 교류의 장'으로서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영국은 유럽 커피 소비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커피 선진국이 되었다. 당시에는 분쇄한 커피가루를 물과 함께 불에 끓여 마시는 터키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는 침출법이 개발되었고 추출기구가 발명되는 등 추출법과 추출기구의 발전으로 커피를 '집착하는 세계'로 이끌기 시작했다.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커피를 널리 마시게 되었고 미국에도 전해지게 되었는데, '보스턴 차 사건'으로 폭발한 미국과 영국의 대립은 북아메리카 사람들의 음료가 차에서 커피로 대체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커피 소비 증가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보스턴에서는 홍차를 대신해 옅은 커피가 보급되었고 '약배전'을 대표하는 지역이 되었다. 특히 미국의 커피하우스는 태번(선술집)이자 펍의 형태가 섞여 있었는데 주민 간 교류와 상담의 장소를 비롯하여 지역행사를 위한 '공민관' 역할까지 겸하는 공공장소였다. 이처럼 커피와 카페는 시대마다 지역마다 여러 이유들의 영향을 받으며 각기 다른 경로로 다양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현재의 어떤 의미와 역할을 하고 있을까? 또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까? 생각해보게 된다. 
 현재 세계에서 재배되는 절대 다수 아라비카 종은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티피카와 부르봉 두 품종의 후손이 된다고 한다. 티피카 계보는 이슬람교도에 의해 전파되었으며, 부르봉은 오로지 부르봉 섬에서만 재배되다가 19세기 경 브라질 상파울루로 이식되어 확산되었다. 나폴레옹의 영향으로 커피붐이 일어나기도하고, 다양한 추출기구가 발명되기도 하지만 커피 반대 캠페인이나 녹병 판데믹으로 주춤하기도 했지만 로부스타 종의 발견으로 이를 극복하기도 했다. 1차세계전쟁으로 인한 몇 차례의 대폭락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커피의 확산에 영향을 끼치는 측면도 있었다. 이후 경제적, 사회적 영향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계속해서 발전해 온 커피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참으로 막연한 용어이긴 하지만 현재 '서드웨이브'의 흐름을 맞고 있다. 그리고 커피를 둘러싼 시대의 흐름은 지금 이 순간도 변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아라비카종 전파의 열쇠, 아라비카종 이라는 이름의 유래, 천하를 점령한 이단아 '스타벅스'의 시작, 스페셜티가 시작된 계기와 그 평가 방식 등 커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워줄 정보가 가득 채워져있다.
 저자 탄베 유키히로는 한 잔의 커피는 향기 가득한 로망으로 넘치는 '이야기'들이 녹아있고, 까만 액체를 입에 머금는 순간 우리는 그 '이야기'까지 함께 마시는 셈이고 커피의 역사를 아는 것은 곧 커피의 이야기를 알아간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일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예멘과 에티오피아, 유럽과 미국의 역사 전개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사건들에 스며들어있는 커피 이야기를 읽으며 즐거운 통찰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암에 관한 유전자학 및 미생물학을 가르치는 저자의 '이과적 특성'을 살린 고증에 가까운 자료조사와 촘촘한 사실 확인 과정으로 믿을 만한 정보라는 느낌을 느낄수 있었다. 
 내가 '커피'라는 취미를 갖게 된 것은,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맛과 향을 추구함에 있어 집착의 단계에 가깝게 되었고 이를 위해 연구와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아내 덕분이다. 어떻게 우리가 커피를 마시게 되었고 발전해왔는지, 또 어떻게 변해갈지 이제 더 많은 내용을 공유하면서 더 즐거운 대화를 이어가며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내가 내려주는 게이샤를 마시면서 '이게 원래 에티오피아에 있는 마을 이름 이라면서?' 라고 얘기하면 신나서 이것저것 떠들어 댈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즘 즐겨먹고 있는 방식

Erik Normark 라는 즐겨보는 채널을 보고 배웠다. 맛도 꽤 좋은데다 간편해서 좋다. 덤으로 집에서 캠핑느낌도 낼 수 있다.

 

밖에서도 안써본 알콜버너를 집에서 쓴다. 작은 주전자에서 수증기를 내뿜으면서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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