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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로마의 일인자 1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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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로마에 가본 적은 없다. 하지만 고대 로마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최대 7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하고 웅장한 경기장인 콜로세움, 현재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어서 오페라, 콘서트를 비롯하여 베르디 페스티벌이 개최 되기도 하는 로마원형극장 등 2000여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제 모습을 간직한 여러 유적들은 언제나 로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 충분하고 언젠가 직접 가서 보고싶은 기분을 만들어낸다. 특히 그 웅장한 아름다움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와 달리 다신교였던 로마에서 모든 신을 위해 지어진 판테온 신전 등의 유적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으로 유명한 한니발, 평민을 위한 사회 개혁을 꿈꾸었던 그라쿠스 형제, 그리고 황제는 아니었지만 황제를 의미하는 단어인 ‘시저’의 기원이 된 카이사르 등 수없이 많은 매력적인 인물들의 존재는 로마가 엄청나게 오래전에, 그리고 대륙의 반대편에 존재했었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좀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로마사를 다룬 책을 찾아보게 한다.
하지만 먼 거리때문에 직접 가보는 것이 어려운 만큼 좋은 역사서를 고르는 일 또한 어려운 일이다. 역사서의 특성상 역사가의 주관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역사를 보는 관점에 대한 그러한 영향은 내 삶에 직접,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다음 읽을 책을 고르는 일에 더욱 신중해 질 수 밖에 없다. 어떤 책들은 너무 어렵거나 지나치게 세밀한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있어 읽기 힘들거나, 반대로 어떤 책은 너무 간략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구체적인 삶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기도 했다. 특히 현재 영웅이라 불리우는 특정 인물에만 초점이 맞추어져서 균형잡힌 시각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책도 많았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7부작은 호주의 작가 콜린 매컬로가 20년 가까이 집필한 역사소설로 작가로서 남은 인생을 건 역작이다. 처음에는 그 방대한 양 때문에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이 책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픽션(fiction)과 역사적 사실(fact)의 사이, 즉 팩션(faction)의 형식으로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서재가 로마사 전문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사료와 연구서적을 갖추었을만큼 연구와 조사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사실은 내용의 몰입감을 충분히 높여주기도 했다.
오래전에 일어난 사실을 공간, 상황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더불어 대화나 편지를 엮어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작가의 주관이 섞인 묘사는 불가결하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사건전개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각색하게 되면 오히려 본연의 가치는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은 작품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 매컬로는 아주 드물게 가공의 인물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인물과 공간에 대한 묘사는 문헌과 비문헌의 증거에 입각하고 있다. 또 당대 로마인의 일상생활을 구성하던 온갖 제도와 문물에 대한 묘사 역시 아주 꼼꼼한 고증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금새 기원전 110년으로 돌아가서 수석 집정관이 된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루푸스의 저택에서 출발하여 포룸 로마눔이 내려다보이는 팔라티누스 언덕 게르말루스 고지 가장자리를 지나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의 신전을 향해 가고있는 토가를 입은 행렬을 따라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7부작의 배경은 거대한 체제 변혁기이자 지중해 제국이 완성되는 시기로 500년 역사의 공화정 체제가 와해되고 새로운 통치체제가 탐색되는 시기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대작의 1부 “로마의 1인자”는 천년이 넘는 로마 역사의 가장 큰 분수령이었던 바로 그 시대적 과제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변혁을 시작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리우스, 술라, 카이사르 등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책이 다른 역사서와 다르면서도 굉장히 흥미로웠던 점은 역사적인 사건에만 주목하거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의 관점에서만 서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와의 혼인으로 ‘디그니타스’, 즉 로마에서 가장 존엄한 가문의 가치와 지위를 얻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까지 알게된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어색하면서도 애틋한 심리에 대한 묘사, 사크라 가도를 통해 사케르 언덕을 올라 마르가리타리아 주랑건물에서 율리아에게 줄 진주를 구하는 모습에 대한 생생한 표현들, 그리고 전 부인 그라니아에게 이혼을 통보하고나서 이어지는 대화와 그녀의 감정변화 등이 경쾌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는데, 특히 마리우스가 나가고 난 후 혼자 남게 된 짧은 시간 동안 그녀의 좌절이 삶의 의지로 이어지고 다시 허망함으로 바뀌는 장면의 감정표현은 너무 절묘해서 읽는 내내 나도 시시각각 감정의 변화를 공유하고있는 기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매컬리의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서술은 사실 결론적인 역사적 사건에 있어서는 중요하지도 않고 큰 의미가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새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그러하듯 역사적 인물도 마찬가지로 주변의 영향으로 인해 고민하기도하고 변화하기도하고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하면서 순간순간의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어떤 한 사건이 한가지 이유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것처럼, 당연히 역사적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도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폭넓은 사고를 통해 내 안에서 재조립된 역사적 사실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의 의미와 인과관계를 주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이미 표면적으로 알려진 역사적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막을 표면과 연결해 생각하게 되면 이미 일어난 결과에 대한 당위성으로 이어져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비로소 균형잡힌 주관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사회적, 경제적 변화는 빨라지고 있는 반면 세계는 계속해서 좁아지고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건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된다. 그리고 그 속도와 영향력에 대한 규모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자세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습득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이해하면서 역사를 공부해야한다. 
역사라는 것은 글쓴이의 주관이 개입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소설의 형식으로 서술되는 경우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사실을 구분해내면서 읽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너무 비판적이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특히 강자의 입장에 치우친 작가가 아닌 좋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작가가 쓴 좋은 책이 있다면 우리에게 굉장히 좋은 일일 것이다. 매컬리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가 그러한 점에서 좋은 역할을 해줄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이유에 앞서 2권에서 전개될 이미 집정관의 꿈을 달성한 마리우스가 어떻게 메텔루스와의 정치적 싸움을 이어갈 것인지, 그 옆에서 지위를 획득해가고 있지만 본성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다시 메트로비오스를 찾아간 술라와 그의 아내 율릴라의 뒷이야기, 특히 이들을 통해 드디어 활약을 시작하게 될 카이사르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인물들이 어느 길을 따라 움직였는지 생각하면서 실제 거리의 모습을 상상하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정교한 지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느낌만 훑어보기엔 그럴싸해 보이지만, 꼼꼼히 찾아보다보면 어떤 구조로 생긴 지형인지, 건물들은 어떻게 배치되어있는지, 도로는 어디에서 어디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마 지도전문가가 만든 지도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네비인생 10년차의 경험으로 판단하건데 지도로서의 기능적 결함이 있는 지도로 판단된다.

 

번역은 10점 만점에 3점 정도를 주고 싶었다. 참고로 '세계사편력'의 번역점수는 9.5 이상은 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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